영화에 무지하다. 무슨 예술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영화를 보면 어김없이 실망하는 걸 보면 영화를 깊이있게 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Time Killing으로 액션이나 SF를 보면서 스토리를 즐길 뿐이다.
한 때 한국 영화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다. 벗기기도, 조폭도, 뻔한 사랑 타령도 죄다 싫었다. 박찬욱식의 인간 잔인성을 탐구하는 것도 질색이다.
생각을 바꿔준 영화가 '쉬리'다. 헐리우드 못지 않은 화면과 액션, 스토리로 한국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려 줬다. 'JSA 공동경비구역', '웰컴투 동막골' 이런 영화도 좋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영화 선택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다. '해리포터'니, '트랜스포머'니 하는 영화들로.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집사람과 심야 영화를 본 게. 아이들이 성당 여름캠프를 간 덕이다. 마침 흥행 1위인 '해운대'에 대한 추천의 말을 주변에서 듣던 터다.
한국 영화에서 재난 영화는 쉬운 소재가 아니다. 한반도 좁은 땅에 나타날 수 있는 재난의 양태가 한정적이다. '딥 임팩트'류의 행성충돌, '코어'류의 지각변동, '볼케이노'류의 화산폭발, '트위스터'류의 토네이도, '버티컬 리미트'류의 눈사태 등등. 어느 것 하나 우리나라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소재들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껏 우리 기억에 생생한 몇년 전 동남아 쓰나미를 소재로 한 것은 적절했다. 그렇잖아도 한반도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야기도 제법 재미가 있었다. 컴퓨터그래픽이나 음향효과도 할라우드 영화와 크게 차이나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해운대'는 할리우드 블러버스터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한 연구원의 경고 → 집단적인 무시와 안전불감증 → 경고 현실화 → 위기 극복 또는 수습 과정에서 인간애 확인이라는 전형적인 형태다.
'해운대'는 할리우드 식이면서도 대단히 한국적이다.
우선 이야기 설명이 너무 '착하다'. 할리우드 영화는 이야기가 굉장히 압축돼서 함축되는 경우가 많다. 등장 인물간의 갈등을 몇 개의 대사와 짧은 에피소드로 추리해 내야 한다. 시간 배열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어 정신 없다.
반면 '해운대'는 대사와 장면을 충실히 따라가면 등장인물 간에 관계와 갈등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영화 전체 러닝타임 120분의 절반 가량이 인물 설명에 할애되고 있다. 쓰나미 해일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중반부터 시작된다. 초반부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는 건 이 때문이다.
여기에 영화 '친구'에서 본듯한 부산 사람들의 살아가는 풍경이 영화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재난 영화와 최만식(설경구 분)의 야구장에서 취중 장면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강연희(하지원 분)와의 연애를 보여주는 데에도 필요 없는 부분이다. 단지 배경이 부산임을 재차 삼차 강조하는 것일 뿐이다.
초반 설명을 3분의1, 4분의1로 팍 줄였다면 더욱 좋은 재난 영화가 됐을 것 같다.
재난 영화의 결말은 대체로 주인공-특히 남녀-의 투지와 기지로 위험상황을 가까스로 해소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끈끈한 동료애를 확인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감동을 준다.
'해운대'는 대단히 한국적이다 보니 위기극복 보다 가족애에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재난에 맞서는 불굴의 의지나 투지를 찾아볼 수 없다. 쓰나미에 무너지는 다리에서, 쏟아지는 콘테이너 세례에도, 유조차량의 폭발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오동춘(김인권 분)의 이야기 정도가 많이 본 장면이다.
'해운대'에서 후반부에서는 가히 쓰나미라고 부를 정도로 한국적 정서-사랑과 화해-를 한꺼번에 쏟아낸다. 두 연인 즉, 만식과 연희, 민기(최형식 분)와 예원(김희미 분)의 애정 확인, 만식과 작은 아버지(송재호 분)의 화해, 휘(박중훈 분)와 이혼한 아내 유진(엄정화 분)의 화해와 사랑, 동춘(김인권 분)과 동춘모의 모자애, 연희와 만식모(김지영 분)의 화해 등.
민기와 예원의 딸 지민(김유정 분)이가 부모를 잃은 슬픔을 쉽게 극복한 모습은 이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차라리 상투적이긴 하지만, 지민의 할머니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지민에게 "엄마 아빤 하늘나라에서 씩씩한 우리 지민이를 지켜보고 계실거야"라고 말하는 게 일관성이 있다.
'해운대'에 나오는 CG는 해일의 포말 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우리 손으로 해냈다고 한다.
옥의 티로 지적한다면 동춘 등이 쓰나미가 몰려온 뒤 가까스로 살아남아 다리에 서 있는 장면에서 저 너머에 보이는 해운대 주변 건물들이 물에 잠기지 않은채 성하게 서 있는 점이다. 일본 대마도 해협 심해의 지각 변동을 보여주는 서너번의 장면도 미니어처 촬영임이 너무 쉽게 드러났다.
높은 파도가 도심으로 덮치는 장면에서 두 번의 블랙아웃이 나오는데, CG 비용으로 책정했다는 350만달러와 관련이 있지 않으련지.
그렇다고 '해운대'를 전체적으로 평가절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리고 한국 영화에서 재난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재미있게 봤다. 포털 사이트 영화코너에서 점수를 준다면 별 4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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